매년 이때 쯤이면 늘 등장하는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제 값을 한 적이 있던가. “여러 가지 일도 많고 어려움이나 탈도 많음”을 의미하는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갈무리하면서 그동안 회자되었던 올해의 사자성어를 되짚어 본다.
해마다 연말이면 여러 기관, 단체의 이름으로 올해의 사자성어를 내 놓는다. 한 해 동안 큰 이슈가 되거나 국민들의 여론을 대변하는 민심을 축약한 네 글자는 대개 중국의 고사성어에서 따온다. 그 중 언론으로부터 가장 관심을 끄는 올해의 사자성어는 교수신문이 발표한 ‘도량발호’(跳梁跋扈)가 아닌가 한다. 뜻은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뛰다”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으로 국회 탄핵 사태가 반영되었다는 설명도 있었다.
올해의 사자성어를 보면서 떠오른 것이 가장 최근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있었던 2016년 대학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를 소환해 본다. 2016년 교수신문이 발표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군주민수’(君舟民水)다. “임금은 배 백성은 물로, 강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의미로 당시 대통령의 국회 탄핵 정국을 압축한 말로 들린다. 그때나 지금의 민심은 비슷하지만 사자성어의 주체가 조금 달라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탄핵 후 이듬해 헌법재판소에 의해 탄핵이 인정되어 파면된 2017년 교수신문이 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이다. 의미는 “그릇된 것을 깨뜨려 없애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이다.
시대상을 반영하는 올해의 사자성어가 현실을 꼬집어 교훈을 주고 있지만 되풀이되는 것을 보면 답답해진다. 올해를 넘긴 내년의 사자성어는 과연 어떤 단어가 선정될지 지금부터 궁금해진다.
올해의 사자성어를 보면서 이와 비슷한 의미의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중국 고서 《장자》에 나오는 ‘당랑거철’(螳螂拒轍)이다. 사마귀가 자신보다 훨씬 큰 수레에 맞서 앞발을 들고 수레바퀴를 멈추려 했다는 데서 유래한다. 뜻은 “제 역량을 생각하지 않고, 강한 상대나 되지 않을 일에 덤벼드는 무모한 행동거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지만 인간의 자만심과 무모함을 경계하는 교훈으로도 사용한다.
'당랑거철'은 2020년 진보 지식인 모임 사회대개혁지식네트워크가 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된 바 있다.
2024년 갑진년. 푸른 용의 해라고 희망차게 출발했지만 연말에 일어난 비상계엄과 대통령의 국회 탄핵으로 사회 전반을 나락으로 내몰았다. 언제쯤 비상계엄 이전으로 돌아갈지 난감하다.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왔으면 한다.
내년에는 다사다난했던 한 해라는 말이 무의미한 의례적인 인사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가장 먼저다.